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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재하지만, 다능하지 않은.
by 슈퍼노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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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마음으로 길을 되돌려 가려다 오늘도 나는 딱지를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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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의 사고방지보다 불편한 시설을 개선하는게 중요할까,
아니면 불편을 감수하고 0.03%의 사고를 방지하는 것이 중요할까.


애초에는 지하철 형광등에 덮개가 있었다.

뭐냐 하면.. 지금은 형광등이 죄다 보이지만 이전에는 투명아크릴판으로 된 덮개가 덮고 있었는데, 형광등의 조도가 너무 낮아서 그 아크릴판을 치워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요새 나오는 지하철에는 형광등 덮개 핀이 없고 예전 지하철에는 형광등 덮개 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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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1937년 체코의 천재적인 차 디자이너 한스 레드빈카는 타트라 V570을 만들었다.
트렁크에 달린 공랭식 엔진, 당시로서는 드물게 100km의 최고시속..
평소 타트라의 팬이었던 히틀러는 레드빈카를 만찬에 초대했고, 레드빈카는 답례로 타트라의 설계도를 주었다.
히틀러는 바로 포르쉐 박사에게 타트라의 설계도를 주었고, 포르쉐 박사는 이를 토대로 폴크스바겐을 만들어냈다.
포르쉐 박사와 아들 피에흐는 프랑스의 푸조를 접수하러 갔다가 전범으로 몰려 1947년까지 프랑스에서 구금당한다. 감옥에 갇혀있던 포르쉐 박사는 스포츠카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폴크스바겐과 비슷하지만, 작지만 순발력 있는 스포츠카..
석방 후 포르쉐 박사는 자신이 구상한 스포츠카를 만들기 시작했다. 엔진, 기어, 헤드라이트, 서스펜션은 폴크스바겐의 것을 그대로 썼고, 스프링이나 새쉬마감재 등은 연합국의 수입제한조치를 피하기 위해 중립국인 스위스에서 몰래 들여와서는 1948년 포르쉐 356을 탄생시킨다.

람보르기니
2차 대전이 끝나자 연합국은 이탈리아가 다시는 전쟁을 못 일으키게 아예 농업국으로 만들어버리려고 한다. 이탈리아는 농업부흥 정책을 실시하게 되고,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트랙터 사업으로 큰 돈을 벌게 된다. 평소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던 람보르기니는 1962년 페라리를 한 대 구입하게 된다.
어느 날, 람보르기니는 음식점에서 우연히 엔초 페라리를 만나게 된다. 자동차 얘기를 하면서 람보르기니가 평소의 불만이었던 페라리의 기어박스 소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격한 논쟁이 시작되자, 페라리는 "트랙터나 만드는 주제에 무슨 자동차를 논하느냐"고 폭언을 퍼부었다.
이에 열 받은 람보르기니는 1963년 람보르기니를 설립하고, 1호차 350G를 생산하면서 자동차사업에 뛰어든다. 이후 람보르기니와 페라리는 철천지원수가 되었다. 1993년 죽을 때까지..

애스턴 마틴
영국의 로버트 뱀포드와 라이오넬 마틴이 1913년 "부가티"에 대항하고자 만들었다. 애스턴 마틴은 스포츠카라기보다는 본드카라는 인식이 강하다. 골드 핑거에서부터 시작해서 골든 아이까지..
순발력, 실내 인테리어, 핸들링 등은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한 가지 단점.
"인간이 타기에 적합치 않은 뒷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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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F-14A
YF-14A는 F-14A의 프로토 타입으로 2기의 목업이 제작된 후에 만들어졌다. 1970년 12월 21일 최초로 비행했으며 1970년까지 모두 12기가 제작되었다. 이들은 모두 다른 종류의 테스트를 위해 사용되었으며 157986호기는 뒤에 F401 엔진을 장비한 F-14B의 프로토 타입이다. YF-14A는 외관상 기수에 테스트용 프로브가 달려있는게 특징이며 2호기(147981)는 스핀 시험용 소형 카나드가 기수 앞부분에 붙어 있는 등 각 기체가 세부적으로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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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4A
F-14A는 최초의 양산형으로 처음에는 A형을 생산하고 이어서 엔진을 강화한 B형, 전자전비를 강화한 C형을 생산할 예정이었지만 B형과 C형의 개발이 좌절되는 바람에 A형은 1985년까지 545기가 생산되었다. 하지만 같은 A형이라도 세부적으로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뒤에 생산된 블록의 개수가 이미 생산된 기체들의 개수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실전부대에서 사용하는 F-14A는 거의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각 블록별로 가장 큰 차이가 나는 부분은 비버테일, 에어브레이크, 기수 하면의 센서들, 벌컨용 배기구 등이며, 특히 초기형에서 기수하부에 장비되었던 IRTS는 TCS로 불리는 AAX-1 텔레비전 카메라로 교체되어 1983년부터 포인트 머그에서 시험을 거친 뒤 133기가 조달되어 F-14A에 장비되었다.
각 블록별로 진화를 살펴보면, 1971 회계연도분의 블록 65부터는 소폭 개량형인 TF30-PW-412A 엔진이 장착되었고 1972 회계연도의 블록 70부터는 글러브 페어링 상부에 펜스가 추가되었다. 비버 테일과 에어 브레이크는 1973 회계연도의 블록 75부터 개량되었고 1974 회계년도의 블록 85부터는 AN/ARC-159 UHF 라디오가 도입되었다. 1975 회계연도의 블록 90부터는 기수 끝부분에 AOA 프로브가, 1976 회계연도의 블록 95부터는 TF30-PW-414 엔진이 장착되었다.
1977 회계연도의 블록 100에서는 플랩과 슬래트가 개량되고 연료계통 및 AWG-9 시스템의 개량으로 신뢰성이 향상되었다. 1979 회계연도의 블록 110 후기부터는 비버 테일과 주익 글러브 하면에 AN/ALQ-126 안테나가 추가되었고, 1982 회계연도의 블록 125에서는 TCS가 장착되었다.
F-14A 중 4기는 F-14D의 프로토 타입으로 전용되었고, 블록 85와 110의 기체 중 18기는 F-14D(R)로, 블록 115와 블록 120의 기체 중 32기는 F-14A+로 개조되었다.

JF-14A
기체번호 158613번 F-14A. 테스트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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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4A-GR (이란공군)
F-14A가 수출된 유일한 국가가 바로 이란으로서, 이란에 인도된 기체는 블록 90에 해당하는 블록 05형 30기, 블록 10형 32기, 블록 15형 18기의 모두 80기이며, 테스트 목적으로 그루먼사에 남은 1기를 제외하고, 총 79기가 1976년 1월 27일부터 이란공군에 인도되었다. 애초에 이란은 F-14와 함께 F-15, F/A-18L(지상형) 등도 검토하였으나 1973년 파리 에어쇼에서 F-14에 감탄한 팔레비왕이 F-14의 구입을 결정하였다.
F-14A-GR은 F-14A 블록 90과 같은 기종이지만, 당시 최첨단 기술인 ECCM 장비는 제거되고, 레이더 장비는 다운그레이드된 상태로 출고되었다. 이란 혁명으로 미국의 지원이 끊겨 F-14A는 전투보다는 간이 조기경보기 형태로 운용되었다.(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최소 7기 격추당함.)

RF-14
TARPS 장착 기종이다. F/A-18 대신 행동반경이 큰 F-14A를 전술정찰기로 사용한 것을 RF-14로 명명했으나  F-14D의 전 기종이 TARPS를 장착하여 큰 의미가 없어진 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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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4A+ (F-14B)
애초에 F-14B에 장착될 엔진으로, GE의 GE1/10 엔진과 프랫 & 휘트니의 JTF22가 경합을 벌여 결국 JTF22가 F401-PW-400으로 명명되어 157986번 F-14B 프로토 타입에 장착된다. 하지만, F401 엔진의 결과가 예상외로 저조하여 B형 양산을 포기하고 A형의 생산을 계속하게 된다. 이후 1979년부터 TF-30 엔진을 대체할 수 있는 엔진 개발이 추진되었고 F-14A의 7호기를 이용하여 신형 엔진인 F101-DFE 엔진의 실험기가 만들어졌다. 이 실험기는 F-14B 슈퍼 톰캣이라 불리게 되었고, 각종 실험을 실시하였으나 미해군은 곧 폐기시킨다. 그리고 1984년 그루먼사는 GE의 F-110-GE-400 엔진으로 다시 테스트를 실시하였는데 실험결과가 기대치 이상으로 근접하자 F-14A+라는 명칭으로 생산이 시작되었고, 1991년 5월 1일부터 F-14A+는 F-14B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F-14C
F-14C는 톰캣 3단계의 마지막 단계로 전자장비를 강화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높은 가격부담과 B형의 실패로 인해 계획은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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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4D
D형은 원래 계획에는 없었던 것이었으나 B형과 C형의 개발취소 이후 1984년에 발표되었다. 당시 개발 중이었던 F-14A+의 애비오닉스를 완전히 개량한 것으로 그 기반은 F-14B 슈퍼 톰캣에서 시작되었다. 원래 장착되어 있던 AN/AWG-9 레이더 대신 AN/APG-71 레이더를 장착하여 디지털화 및 대지공격 능력을 꾀했고, 신형 IRST와 TCS, AYK-14, AN/ALR-67 레이더 경보 시스템, AN/ASN-139 관성항법 장치, 마틴 베이커의 SJU-17A/V 이젝션 시트 등이 도입되었다.
F-14D의 프로토 타입은 A형 4기를 개수하여 만들어졌고 최초비행은 F-14B 슈퍼 톰캣이 1986년 9월 29일, 애비오닉스를 갱신한 기체가 1987년 11월 23일에 비행하였다. 그리고 1990년 3월 23일에 양산형이 롤 아웃되었다.
F-14D의 생산은 당초 127기가 계획되었으나 예산문제로 1988 ~ 1990 회계연도분의 37기만 생산되었고 기존의 A형을 개수하여 1990 ~ 1991 회계연도분으로 18기를 추가했다. 이것이 바로 F-14D(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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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14D
F-14D의 프로토 타입으로 F-14A를 개수했다. 총 4기이다.

F/A-14D Strike Cat
톰캣의 F-15화를 추구하는 프로그램. A-6E 인트루더의 퇴역에 따른 해군의 장거리 침투공격능력의 상실문제로 미해군이 고민하고 있던 와중에 노스롭 그루먼사는 새로운 계획을 제시하였다. F-14D의 능력에 AN/ALE-50 견인 디코이, FLIR, 나이트 비전 고글 등이 추가로 도입하고 F-15E의 APG-71 공대지 타격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F-15E와 같은 수준의 공격력을 보유하는 것이다.
당초에는 1995년부터 4단계에 걸쳐 250기의 톰캣에 실시하며, 4단계까지 업그레이드 완료 후에는 JDAM, JSOW의 운용능력까지 부여되려 했으나 총 예산이 약 92억 달러나 되어 포기.

F-14T
F-14T는 팬텀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무장을 스패로우 + 사이드 와인더만 장착하며 전자장비도 다운그레이드 된 것. 미해군의 승인거절.

F-14X
피닉스만 8발 장착하며, 역시 레이더 장비는 다운그레이드. 미해군의 생산 및 이스라엘 수출 승인거절.

F-14 Quick Strike
인트루더 퇴역 공백을 보충하기 위해 나온 기체. 하푼이나 매버릭도 장착가능하도록 설계되었지만, F/A-18 호넷 프로그램 등장으로 승인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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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cat 21
기존의 톰캣을 개조하는 프로그램으로, 스텔스성을 상당 부분 도입하여 F-22와 같은 능력을 끌어내려 했다. 엔진은 F110-GE-129로 교체하여 초음속 순항비행을 구현하고, 전자 장비도 대부분 업그레이드 하는 계획으로 비용 대 효과면에서 뛰어난 계획이었다.

Attack Tomcat 21
톰캣 21을 개량한 어택 톰캣 21은 A-12 어벤져에 적용될 레이더와 전자장비를 그대로 도입한 것으로, 둘 다 채택 승인은 얻지 못하였다.

ASF-14
외형상은 F-14의 개념을 따르고 있으나 사실상 새로운 기체. ATF(Advanced Tactical Fighter)와 ATA(Advanced Tactical Attack Aircraft)의 장점을 살려 만드는 기체로, 사실 새로 개발하는 기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예산과 톰캣 21보다 떨어지는 효율성 때문에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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