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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재하지만, 다능하지 않은.
by 슈퍼노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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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horn은 코뿔소라는 뜻이다>


Nashorn

1941년 6월, 독일군의 소련침공작전은 그럭저럭 성공하는듯 보였다.
하지만 독일육군의 주력이었던 3.7cm와 5cm 대전차포가 T-34와 KV-1을 만나 쓸모없는 쇳덩어리가 되면서 주춤하게 되고 이에 독일군은 급하게 신형 7.5cm포를 배치하여 4호 전차와 3호 돌격포의 주포를 강화하고, 마더 시리지를 비롯한 대전차 자주포를 실전에 투입시킨다.
한편, 1942년 독일군은 신형차량 개발과정에서 쓰다 남은 차체에 10.5cm 포와 12.8cm 포를 탑재한 대전차 자주포를 시험삼아 실전에 투입시켰는데 의외로 뛰어난 위력을 실감한다. 하지만 프로토타입이라 대량생산된건 아니기에 독일군은 신형 대전차 자주포의 능력과 필요성을 가늠하게 되었고 당시 크루프사에서 개발정이었던 71구경 8.8cm 대전차포 Pak43에 주목한다.(이 포는 나중에 티이거 II와 야크트 판터의 주포로 탑재된다.)


한편 독일군은 10.5cm 자주유탄포용으로 시험제작된 3호 전차와 4호 전차의 차체를 결합한 섀시를 기반으로 하여 15cm 유탄포 sFH18을 탑재시킨 자주포 Hummel에 사용하려던 참이었고, 이를 1943년 5월부터 200대 제조할 예정이었다.(3/4호 전차간 공통점이 많아 부품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독일군의 의지) 대전차 자주포 차체로 활용했던 1 ~ 3호 전차에는 7.5cm 급 이상의 포를 탑재할 수 없어 새로운 차체를 물색하던 독일군은 앞으로 생산될 Hummel 차체에 Pak43을 얹어 시험해보기로 하고, 1942년 10월 시험기가 생산된다. 시험기에 감탄한 히틀러는 Hummel 생산분 200대 중 100대에 Pak43을 탑재할 것을 명령한다.
Pak43을 탑재한 100대의 Hummel은 Hornisse(말벌)이라고 명명되었지만, 곤충의 이름은 강한 인상을 주지 못한다는 히틀러의 지시에 따라 Nashorn으로 변경되었다.


<동계위장된 Nashorn>

Nashorn 생산을 위해 포는 크루프, 차체는 알케트사가 맡아 작업을 진행하였는데 예정된 제작수량은 1943년 5월 12일까지 총 500대였다.
그러나 Pak43의 제작은 계속 늦어졌고, 다급해진 크루프사는 Pak43 포가에 Pak41 포신과 폐쇄장치를 얹은 Pak43/41의 차량탑재형인 Pak43/1을 만들어 Nashorn에 장착한다.(1943년초) 1943년 3월 1일에까지 Pak43/41은 23문이 겨우 만들어졌고 독일군의 하계공세 시점에는 85대, 1943년말에는 345대, 1945년 5월 9일(독일군 항복)까지는 총 494대 제작되었다. 하지만 Nashorn의 위력은 매우 뛰어나서 독일의 모든 전선에 투입되었고, 특히 소련군 전차를 1발 격파할 수 있었던건 구축전차 Ferdinand와 대전차 자주포 Nashorn 밖에 없었다.


 


Hummel

Hummel은 Nashorn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차체의 기본구조는 Nashorn과 동일하다. 다만 탑재하는 포가 다른데, 원래 Hummel은 10.5cm 유탄포를 탑재하여 경야전 자주유탄포로 쓸 예정이었으나 개발 도중에 15cm 포로 변경되었다.
(구경이 커지게 되어 Hummel의 탄약휴대량은 18발로 감소되었고, 이 때문에 포신없는 Hummel을 개조한 전용탄약운반차가 Hummel을 따라다니게 된다.)

<이것은 Hummel의 프로토타입>






<참고로, Hummel은 Bubble Bee.. 왕벌이라는 뜻이다>
AND
 
F-5A Freedom Fighter
시리즈 최초의 양산형인 F-5A는 시험제작기 YF-5A 3대와 강도시험기 XF-5A 1대를 포함하여 모두 621대가 생산되었다.
해외 수출용으로 개발되었기에 대부분이 MAP(Military Assistance Program : 무상원조계획)용으로 1972년 6월까지 각국에 배치되었다.
기본적으로 당초 계획한 N-156F를 구체화하면서 기체 각 부분의 강도를 강화하여, 주익 아래 하드 포인트를 좌우측에 각 2군데씩 마련하였다. 또한 주익 끝에는 AIM-9 사이드와인더 전용 발사대인 Aero 3B 런쳐 또는 50 갤런짜리 탱크를 장착할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사용 국가의 희망에 따라 공중급유용 프로브를 장착했다.
F-5A의 시작 1, 2호기는 애프터 버너가 없는 GE의 YJ85-1 엔진이 장착되었으며, 시작 3호기부터는 애프터 버너가 있는 J85-GE-5를 장착했다.(추후에 시작 1, 2호기도 같은 엔진으로 변경) 양산형부터는 추력이 향상된 J85-GE13을 탑재하게 되었다.
F-5A의 기수는 뾰족하고 검은색으로 도장을 하여 마치 소형 레이더가 탑재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공기역학적 관점에서 모양을 그렇게 한 것일뿐 레이더는 없다. 원래는 수색 레이더와 관성항법장치를 조합한 휴즈의 TARAN(Tactical Attack and Navigator)를 장착하려 했으나 F-5A를 구입하려는 국가들이 저렴한 가격과 높은 정비성을 요구했기에 장착하지 않았고 사격조준장치도 단순 광학 조준기를 사용했다.
게다가 전자장비도 최대한 단순화하여 통신장비는 UHF 라디오, ADF, TACAN 정도만 집어넣어 50년대 수준과 비슷하게 했다. 새로운 전투기이면서도 장비의 수준은 그대로였지만, 이런 단순함 때문에 오히려 기체의 신뢰성과 정비성이 향상되어 F-5가 성공하게 된 장점이 되었다.

 
F-5B Freedom Fighter
이 기체는 F-5A의 파일럿 훈련을 위한 복좌형으로 동체는 T-38을 사용했다. 반면에 주익과 공기흡입구는 F-5A를 사용하여 복좌형인데도 F-5A보다 동체 길이가 약 26cm 짧다.
연료탑재량이 작아 항속거리가 짧아진 것을 제외하면 F-5A와 기본적인 성능은 동일하다. 그래서 T-38과는 달리 훈련과 전투 임무에 모두 사용이 가능하기에 경제적인 이유로 별도의 훈련기 운행이 어려운 국가에서 운용하기에 최적이었다.
 

F-5C Scoshi Tiger
미공군이 F-5A의 성능 테스트를 위해 스코시 타이거라는 특무부대를 편성하여 베트남전에 투입하였다. 이 부대에서 쓰였던 기체는 F-5A를 개조한 것으로 공중급유 프로브 장착, 엔진 아래 부분에 장갑판 설치, 5개의 파일런을 긴급투하가 가능하게 하였다. 미공군은 테스트 후에 이를 엔진 개량과 함께 C형으로 계획했지만 비용 문제로 취소되었다.


F-5D

F-5C의 복좌형. 단지 계획서상에만 존재한다.

 
F-5E/F Tiger II

MiG-21의 등장으로 F-5A/B를 대체할 해외공여용 전투기 개발이 요구되었으며 그 결과 나온 것이 기존의 전투기를 원형으로 개발된 F-5E이다.
F-5A의 엔진을 교체, 연료탱크의 대형화, 동체 재설계, 수색 레이더 장비 등의 개선을 통하여 기존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전투기가 되었다.
F-5F는 F-5E의 복좌형이다.

 

KF-5E/F 제공호
대한항공이 국내에서 조립한 F-5. 레이더 및 조종 기부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졌으며 채프/플레어를 장착했다.


CF-5A/D(CF-116)

캐나테어사가 네덜란드형 F-5를 양산하여 캐나다 공군에 인도한 기체.

 
T-38 Talon

F-5의 모체가 되는 고등훈련기.

 
RF-5A/E Tigereye
RF-5A는 F-5A의 페어링에 카메라를 장착하여 정찰용으로 사용한 기체. 중소국가에서 저예산 정찰기로 운용되었다. RF-5E는 F-5E에 카메라를 장착한 것으로 RF-5A에 비해 더 많은 종류의 센서 탑재가 가능하다.


F-20 Tigershark (F-5G)
중소국가와 제3세계 국가에 수출용으로, F-16에 대항하기 위해 개발된 F-5E의 업그레이드 기종. 기본적으로 동체는 F-5E와 비슷하지만, 단발 엔진이기에 기체 내부의 설계를 완전히 재설계했다. 기본성능 및 유지보수면에서는  타이거샤크가 유리했지만, 시험기의 잦은 추락사고로 인해 1986년 개발사업이 종료되었다.
AND

<P-61 Black Window>

<F-89 Scorpoion>


Northrop社는 F-5 시리즈와 YF-17 코브라 전투기를 개발한 경력 때문에 경전투기 메이커로 잘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2차 대전 중에 제작한 쌍발 대형 야간 전투기인 P-61 블랙 위도우와 2차 대전 후 방공기인 F-89 스콜피온과 같은 대형 전투기를 주로 제작한 메이커였다.
그런데 미공군이 야심적으로 추진한 센츄리 시리즈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에드거 슈미트를 1952년에 부사장으로 스카웃하면서부터 Northrop社는 경전투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에드거 슈미트는 이미 2차 대전 당시 가장 우수한 전투기로 인정받은 P-51 무스탕과 미국 최초의 후퇴익 제트 전투기인 F-86 세이버를 개발한 엔지니어로서 당시 유행하는 대형 전투기의 흐름에 대해 되돌아보고, 소형 - 경량이면서 더 강한 추진의 엔진을 조합시키는 데에 착안하고 있었다.
특히 6.25 당시 자신이 개발한 세이버가 MiG-15에 고전하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은 에드거 슈미트는 경량 전투기를 무시하는 기존 메이커와 결별하고 자신의 경량 전투기 개념을 실현하고자 Northrop社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커다란 전자장비를 탑재한 고성능 대형 전투기에 밀려 외면당하던 경량 전투기는 수십 년이 지나면서 YF-16과 YF-17의 출현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YF-17 Cobra>

Northrop社가 벤처 비즈니스로 개발한 N-102 Fang은 외형이나 설계 사상이 F-5와는 전혀 다른 기체로 센추리 시리즈가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경량 전투기의 실현 가능성을 검토하는 기체였다. Fang은 수평미익이 있는 델타익의 요격기로, 엔진을 동체 아래에 탑재하고 가변식 공기흡입구를 기수의 아래에 배치한 특이한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주익은 고익배치를 하고 주익의 앞에는 코니컬 캠버를 주었다. 엔진은 GE의 J79 또는 프랫 앤 휘트니의 J57, 라이트의 J65 등이 후보로 올랐으며, 20mm 벌컨을 비롯하여 8종류의 무장을 탑재할 예정이었다.
1954년에 목업이 완성되어 수직미익에 52-2777이라는 미공군 시리얼 넘버를 넣었지만 사실 이 번호는 KC-97L이 사용한 번호였다. 한편 전환훈련용 복좌형도 제안 되었는데, 길이 12.85m인 단좌형의 동체를 13.56m로 연장하여 후방석을 신설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고성능을 추구한 경량 전투기인 N-102는 불행히 같은 시기에 등장한 록히드의 F-104 Starfighter에 밀려 실현되지 못했다.
당시는 미사일 만능주의가 우세하던 시절이어서 높은 기동성의 제트 전투기 공중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미사일 한 방이 모든 것을 끝낸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N-102의 개념을 미공군은 이해하지 못했고 개발계획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물론 마하2를 넘는 제트 전투기가 공중전을 안할꺼라는 예상을 벗어나 베트남전에서 F-4는 미그기에게 당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Fang을 단념한 Northrop社는 눈을 해외로 돌려 NATO, SEATO(동남아조약기구), 중동국가가 보유하고 있던 1세대 제트 전투기를 대체할 새로운 전투기에 대해 검토를 시작하였다. Northrop社는 기술진을 세계 각국에 파견하여 데이터를 수집하였고 알맞은 성능에 가격이 저렴하며, 취급이 용이하고, 신뢰성이 높고, 짧은 활주로에서도 이착륙이 가능한 전투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 세계 각국은 미공군이 개발 중인 센추리 시리즈와 전혀 다른 성격의 전투기를 원하고 있었고, 노후화된 제1세대 전투기를 보유 중이던 나라들은 신기종으로 교체를 희망하고 있었으나 고가의 센추리 시리즈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착안한 Northrop社는 1955년대 초부터 새로운 성격의 경량전투기 개발을 시작하였다.
이로써 N-102기의 구조를 변경시킨 N-156 계획이 시작되었고 이와 동시에 미공군은 기존의 T-33 고등훈련기를 대체할 음속비행이 가능한 차기 제트 훈련기 소요를 발표하였다.
Northrop社는 우선 고등훈련기 사업을 위해 N-156 계획을 고등훈련기쪽으로 방향을 수정하였고 N-156의 조종석을 2인승으로 개조한 N-156T를 미공군에 제시하였다. 이 기종은 비용 대 효과면에서 인정받아 1956년 7월에 채택되어 1959년에 첫 양산형 비행에 성공하였다. 이것이 바로 T-38 Talon이다.
미공군의 고등훈련기 사업에 T-38이 선정된 Northrop社으로서는 자금 걱정 없이 해외수출용 전투기 계획인 N-156F에 다시 여력을 쏟아부었다. N-156F는 1959년 5월 30일에 1호기를 공개하였으며 7월에는 첫 비행에 성공하였다. 당시 N-156F에 장착된 엔진은 후연기가 없는 YJ85-GE-1(추력 955kg)이었고 2호기는 후연기가 장착된 J85-GE-5(추력 1,745KG)를 장착하여 초음속 성능을 확보했으나 3호기를 제작하던 도중에는 미공군은 효용성 및 F-104를 의식해 평가시험을 중단하기도 했다.
1960년대가 되어 미국은 동맹국과 우방국의 공군력 강화를 위해 이들 국가에 대한 군용기 원조 프로그램을 재실시하기로 시작했는데, 이 프로그램에는 Northrop社의 N-156F가 선정되어 N-156F는 다시 빛을 발하게 된다. 초음속 성능의 N-156F로 소련의 MiG-19를 대응할 수 있고, 동맹국과 우방국에 초음속 전투기를 공급하면서도 항공기 탑재 레이더 기술의 유출은 방지할 수 있는 최적의 기종이었던 것이다.(Northrop社는 화력제어 레이더를 N-156F에 장착하려 했지만, N-156F의 기수가 작아서 탑재할 수 없었음) 이런 이유로 선정된 N-156F는 곧바로 양산형 체제로 진행되었고, 1963년 5월에 YF-5A 1호기(N-156F 3호기) 첫 비행에 성공했고 10월에는 F-5A가 첫 비행에 성공한다.


<P-61 Black Win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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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나이 국왕이자 수상이며 국방부 장관이기도 하고, 재무부 장관을 .
겉으로 보기에는 3권 분립이지만 볼키아 국왕이 모든 정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전국민의 의료보험, 연금제도, 정부의 주택 제공 등 탄탄한 사회복지정책으로 국민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어 정치 불안의 염려는 없다.
정규군인 브루나이국군이 약 6천명 정도 있으나, 구르카 용병대 900명이 영국군 지휘하에 주요 시설과 왕궁을 수비하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주둔 비용은 브루나이 정부가 부담하고 있다.

이런 볼키아 국왕의 절대왕정을 뒷받침 하는 것은 그의 뛰어난 경제력으로, 브루나이의 우편과 석유 및 천연가스 사업을 개인 소유로 가지고 있다.
특히 석유 수출로 번 자금으로 일본 증권시장에 투자하여 엄청난 거부가 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증권투자로 번 돈을 다시 미국의 호텔이나 영국의 고성 등에 투자하여 더더욱 그의 부는 늘어나게 되었다.

볼키아 국왕은 큰 씀씀이로 유명하여, 자신의 생일 파티 때 세계 유명 스타들을 초대하여 국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거나, 딸의 생일 선물로 전용 제트기를 사준 일화는 잘 알려져 있으며, 그를 가장 잘 대변해주는 것은 바로 자동차이다.

볼키아 국왕의 취미는 스포츠인데, 특히 드라이빙을 좋아한다.
모든 종류의 자동차를 약 5천대 정도 가지고 있다.
(예전에는 오토바이 400대도 있었는데 싫증이 난다고 바다에 모두 버렸다;;)

국왕의 자동차가 워낙 많은 관계로 국왕은 요일에 따라 날씨에 따라 차를 바꿔 타고 다니며, 주말에는 산이나 바다로 운전을 즐긴다.

또한 각 자동차 메이커에 특별 주문을 하여 희귀한 차를 많이 가지고 있다. 페라리에서 나온 세단(컨버터블도 됨), 롤스로이스 약 170여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또한 애스턴 마틴의 열렬한 팬이라서 애스턴 마틴의 자동차를 약 300대 정도 가지고 있다.(이 중에는 애스턴 마틴에서 특수제작한 왜건형도 있다.)

이외에도 F1 머신도 소유하고 있는데, 미카 하키넨의 벤츠 CLK GTR / 미하엘 슈마허의 페라리 F1 등도 가지고 있다. 특히 F1 머신 전시장에는 방문객이 다가가면 스폿 라이트가 켜지고 스크린에 F1 머신의 드라이버가 우승했던 당시의 동영상이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왕실 운전교사는 F1 레이서였던 러셀 스펜스로, 국왕의 자제들을 가르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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