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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재하지만, 다능하지 않은.
by 슈퍼노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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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4'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8.07.04
    F-14 All-story "형식"
  2. 2008.07.02
    F-14 All-story "날개"
  3. 2008.06.29
    F-14 All-story "엔진"
  4. 2008.06.08
    F-14 All-story "개발"
  5. 2008.06.03
    F-14 in Action(1970s ~ 8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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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F-14A
YF-14A는 F-14A의 프로토 타입으로 2기의 목업이 제작된 후에 만들어졌다. 1970년 12월 21일 최초로 비행했으며 1970년까지 모두 12기가 제작되었다. 이들은 모두 다른 종류의 테스트를 위해 사용되었으며 157986호기는 뒤에 F401 엔진을 장비한 F-14B의 프로토 타입이다. YF-14A는 외관상 기수에 테스트용 프로브가 달려있는게 특징이며 2호기(147981)는 스핀 시험용 소형 카나드가 기수 앞부분에 붙어 있는 등 각 기체가 세부적으로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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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4A
F-14A는 최초의 양산형으로 처음에는 A형을 생산하고 이어서 엔진을 강화한 B형, 전자전비를 강화한 C형을 생산할 예정이었지만 B형과 C형의 개발이 좌절되는 바람에 A형은 1985년까지 545기가 생산되었다. 하지만 같은 A형이라도 세부적으로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뒤에 생산된 블록의 개수가 이미 생산된 기체들의 개수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실전부대에서 사용하는 F-14A는 거의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각 블록별로 가장 큰 차이가 나는 부분은 비버테일, 에어브레이크, 기수 하면의 센서들, 벌컨용 배기구 등이며, 특히 초기형에서 기수하부에 장비되었던 IRTS는 TCS로 불리는 AAX-1 텔레비전 카메라로 교체되어 1983년부터 포인트 머그에서 시험을 거친 뒤 133기가 조달되어 F-14A에 장비되었다.
각 블록별로 진화를 살펴보면, 1971 회계연도분의 블록 65부터는 소폭 개량형인 TF30-PW-412A 엔진이 장착되었고 1972 회계연도의 블록 70부터는 글러브 페어링 상부에 펜스가 추가되었다. 비버 테일과 에어 브레이크는 1973 회계연도의 블록 75부터 개량되었고 1974 회계년도의 블록 85부터는 AN/ARC-159 UHF 라디오가 도입되었다. 1975 회계연도의 블록 90부터는 기수 끝부분에 AOA 프로브가, 1976 회계연도의 블록 95부터는 TF30-PW-414 엔진이 장착되었다.
1977 회계연도의 블록 100에서는 플랩과 슬래트가 개량되고 연료계통 및 AWG-9 시스템의 개량으로 신뢰성이 향상되었다. 1979 회계연도의 블록 110 후기부터는 비버 테일과 주익 글러브 하면에 AN/ALQ-126 안테나가 추가되었고, 1982 회계연도의 블록 125에서는 TCS가 장착되었다.
F-14A 중 4기는 F-14D의 프로토 타입으로 전용되었고, 블록 85와 110의 기체 중 18기는 F-14D(R)로, 블록 115와 블록 120의 기체 중 32기는 F-14A+로 개조되었다.

JF-14A
기체번호 158613번 F-14A. 테스트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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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4A-GR (이란공군)
F-14A가 수출된 유일한 국가가 바로 이란으로서, 이란에 인도된 기체는 블록 90에 해당하는 블록 05형 30기, 블록 10형 32기, 블록 15형 18기의 모두 80기이며, 테스트 목적으로 그루먼사에 남은 1기를 제외하고, 총 79기가 1976년 1월 27일부터 이란공군에 인도되었다. 애초에 이란은 F-14와 함께 F-15, F/A-18L(지상형) 등도 검토하였으나 1973년 파리 에어쇼에서 F-14에 감탄한 팔레비왕이 F-14의 구입을 결정하였다.
F-14A-GR은 F-14A 블록 90과 같은 기종이지만, 당시 최첨단 기술인 ECCM 장비는 제거되고, 레이더 장비는 다운그레이드된 상태로 출고되었다. 이란 혁명으로 미국의 지원이 끊겨 F-14A는 전투보다는 간이 조기경보기 형태로 운용되었다.(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최소 7기 격추당함.)

RF-14
TARPS 장착 기종이다. F/A-18 대신 행동반경이 큰 F-14A를 전술정찰기로 사용한 것을 RF-14로 명명했으나  F-14D의 전 기종이 TARPS를 장착하여 큰 의미가 없어진 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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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4A+ (F-14B)
애초에 F-14B에 장착될 엔진으로, GE의 GE1/10 엔진과 프랫 & 휘트니의 JTF22가 경합을 벌여 결국 JTF22가 F401-PW-400으로 명명되어 157986번 F-14B 프로토 타입에 장착된다. 하지만, F401 엔진의 결과가 예상외로 저조하여 B형 양산을 포기하고 A형의 생산을 계속하게 된다. 이후 1979년부터 TF-30 엔진을 대체할 수 있는 엔진 개발이 추진되었고 F-14A의 7호기를 이용하여 신형 엔진인 F101-DFE 엔진의 실험기가 만들어졌다. 이 실험기는 F-14B 슈퍼 톰캣이라 불리게 되었고, 각종 실험을 실시하였으나 미해군은 곧 폐기시킨다. 그리고 1984년 그루먼사는 GE의 F-110-GE-400 엔진으로 다시 테스트를 실시하였는데 실험결과가 기대치 이상으로 근접하자 F-14A+라는 명칭으로 생산이 시작되었고, 1991년 5월 1일부터 F-14A+는 F-14B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F-14C
F-14C는 톰캣 3단계의 마지막 단계로 전자장비를 강화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높은 가격부담과 B형의 실패로 인해 계획은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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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4D
D형은 원래 계획에는 없었던 것이었으나 B형과 C형의 개발취소 이후 1984년에 발표되었다. 당시 개발 중이었던 F-14A+의 애비오닉스를 완전히 개량한 것으로 그 기반은 F-14B 슈퍼 톰캣에서 시작되었다. 원래 장착되어 있던 AN/AWG-9 레이더 대신 AN/APG-71 레이더를 장착하여 디지털화 및 대지공격 능력을 꾀했고, 신형 IRST와 TCS, AYK-14, AN/ALR-67 레이더 경보 시스템, AN/ASN-139 관성항법 장치, 마틴 베이커의 SJU-17A/V 이젝션 시트 등이 도입되었다.
F-14D의 프로토 타입은 A형 4기를 개수하여 만들어졌고 최초비행은 F-14B 슈퍼 톰캣이 1986년 9월 29일, 애비오닉스를 갱신한 기체가 1987년 11월 23일에 비행하였다. 그리고 1990년 3월 23일에 양산형이 롤 아웃되었다.
F-14D의 생산은 당초 127기가 계획되었으나 예산문제로 1988 ~ 1990 회계연도분의 37기만 생산되었고 기존의 A형을 개수하여 1990 ~ 1991 회계연도분으로 18기를 추가했다. 이것이 바로 F-14D(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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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14D
F-14D의 프로토 타입으로 F-14A를 개수했다. 총 4기이다.

F/A-14D Strike Cat
톰캣의 F-15화를 추구하는 프로그램. A-6E 인트루더의 퇴역에 따른 해군의 장거리 침투공격능력의 상실문제로 미해군이 고민하고 있던 와중에 노스롭 그루먼사는 새로운 계획을 제시하였다. F-14D의 능력에 AN/ALE-50 견인 디코이, FLIR, 나이트 비전 고글 등이 추가로 도입하고 F-15E의 APG-71 공대지 타격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F-15E와 같은 수준의 공격력을 보유하는 것이다.
당초에는 1995년부터 4단계에 걸쳐 250기의 톰캣에 실시하며, 4단계까지 업그레이드 완료 후에는 JDAM, JSOW의 운용능력까지 부여되려 했으나 총 예산이 약 92억 달러나 되어 포기.

F-14T
F-14T는 팬텀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무장을 스패로우 + 사이드 와인더만 장착하며 전자장비도 다운그레이드 된 것. 미해군의 승인거절.

F-14X
피닉스만 8발 장착하며, 역시 레이더 장비는 다운그레이드. 미해군의 생산 및 이스라엘 수출 승인거절.

F-14 Quick Strike
인트루더 퇴역 공백을 보충하기 위해 나온 기체. 하푼이나 매버릭도 장착가능하도록 설계되었지만, F/A-18 호넷 프로그램 등장으로 승인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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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cat 21
기존의 톰캣을 개조하는 프로그램으로, 스텔스성을 상당 부분 도입하여 F-22와 같은 능력을 끌어내려 했다. 엔진은 F110-GE-129로 교체하여 초음속 순항비행을 구현하고, 전자 장비도 대부분 업그레이드 하는 계획으로 비용 대 효과면에서 뛰어난 계획이었다.

Attack Tomcat 21
톰캣 21을 개량한 어택 톰캣 21은 A-12 어벤져에 적용될 레이더와 전자장비를 그대로 도입한 것으로, 둘 다 채택 승인은 얻지 못하였다.

ASF-14
외형상은 F-14의 개념을 따르고 있으나 사실상 새로운 기체. ATF(Advanced Tactical Fighter)와 ATA(Advanced Tactical Attack Aircraft)의 장점을 살려 만드는 기체로, 사실 새로 개발하는 기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예산과 톰캣 21보다 떨어지는 효율성 때문에 기각.
AND
최강의 제공전투능력을 가질 수 있게 한 가변익(VG Wing)은 이착륙 및 상승, 순항시에는 후퇴각을 줄여 익폭하중을 낮추고 양항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초음속 비행시에는 후퇴각을 크게 하여 충격파의 저항을 줄이거나 돌풍하중을 낮출 수 있어 초저공 비행시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초저공 침투임무를 수행하는 공격기나 폭격기는 모두 가변익을 채택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기체로 토네이도나 B-1B 랜서 등이 있다.
가변익 기술은 F-111에서 처음으로 실용화되었으며 개발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2차 대전 당시 독일에서 제작된 Messerchmitt Me P.1101까지 이어진다. 세계 최초의 가변익 전투기인 P.1101은 주익의 후퇴각을 출격임무의 성격에 맞게 지상에서 변경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고속 비행이 요구되는 고공에서의 전투임무에는 큰 후퇴각을, 큰 속도가 요구되지 않는 저공에서의 지상공격 임무에는 작은 후퇴각을 선택하여 출격전에 미리 맞추어 놓을 수 있었으나 비행 중에도 후퇴각을 맘대로 조절할 수 있는 지금의 가변익 전투기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독일공군의 가변익 연구는 종전과 함께 미공군으로 넘어가게 되고 P.1101을 베이스로 벨 X-5 연구기가 개발되어 1951년 6월 20일 첫 비행에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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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제작한 가변익 실험기 벨 X-5. 비행 중 20 ~ 60도까지 날개각도를 조절할 수 있다.

X-5의 개발에는 그루먼사도 협력하였으며 그루먼사는 당시 개발 중인 XF10F-1 재규어 함상 전투기의 이착함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가변익을 채택하여 1952년 5월 19일에 첫 비행을 하였다. 가변익을 장착한 기체는 후퇴각을 변화시킬 경우 주익의 양력중심이 앞뒤로 이동하기 때문에 대치방향의 안정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동체중심선 근처에 가변익의 회전축을 앞뒤로 슬라이딩하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러한 방식은 안정성 확보에는 유리하지만 기계장치가 복잡하고 중량이 중가하는 단점이 있다. XF10F-1의 경우도 중량초과 및 조종성 문제로 개발의 중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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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F10F-1 재규어. 미군 최초의 가변익 전투기

가변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58년부터 NASA에서 중량이 증가하는 가변익의 회전축 슬라이드 기구를 폐지하고 기구를 단순화하는 연구를 추진하였다. 이에 따라 회전축의 위치, 주익의 애스펙트비, 테이퍼비를 바꾸어 여러가지 종류를 컴퓨터로 분석하는 작업이 계속되었다. 그 결과 1959년 NASA의 연구진은 새로운 가변익 기술을 발견하게 되었다. NASA의 가변익 방식은 고정된 회전축을 동체중심선과 멀리 떨어진 기체 바깥쪽으로 옮기고 양력 중심을 주익 뿌리 부분에 가깝게하여 이동을 최소화하며 주익의 테이퍼비를 크게 하는 방법이었다.
이 연구결과에 따라 F-111로 가변익이 실용화되었다. F-111의 개발을 담당한 제너럴 다이나믹스는 개발파트너로 가변익 개발에 경험이 있는 그루먼사를 선정하였으며 그루먼사는 해군형 F-111B의 개발을 맡았으나 중량증가문제로 실패하고 경험을 F-14로 이어나간다. 가변익 기술에 있어 그루먼사는 X-5, XF10F-1, F-111, F-14 등의 개발작업을 가장 많은 기술을 축적하고 있으며 영국, 독일, 이탈리아의 합작품 토네이도 개발시에도 그루먼사의 기술제휴가 있었기에 성공하였다.
F-14는 F-111에 이은 NASA 방식의 가변익을 채택하였으나 그루먼사는 모델303을 구상할 때 고정 후퇴익과 가변익을 모두 검토하였다. 그 뒤 미해군의 VFX 요구조건을 만족시키려면 고정후퇴익의 경우 기체의 대형화와 중량증가의 문제점이 있어 결국 가변익기로 결론이 내려졌다. 또한 함상기의 경우 주익을 접어 공간을 절약해야 하기에 가변익을 채택할 경우 별도의 주익을 접는 장치가 필요 없다는 이점이 있다.
F-14에 장착된 가변익의 최대 특징은 제공전용으로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상승, 하강, 급선회 등이 요구되는 공중전에서 가변익이 주는 이점을 100% 발휘하기 위해 F-14의 파일럿은 가변익을 자동모드로 선택해 놓기만 하면 컴퓨터가 비행상황에 따라 자동으로 적당한 후퇴각을 선정해주며, 날개 또한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항상 최적의 비행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또한 6G 기동 중에도 가변익 작동에 가능한 액튜에이터를 장착하고 있다. F-14의 가변익은 비행 중에 후퇴각이 20 ~ 68도까지 자유롭게 움직이며 항모상에서 격납될 때는 수동으로 최대 75도까지 후퇴시킬 수 있다. 비행 중의 후퇴각 변경은 CP-10661A Central Air Data Computer의 분석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F-14의 주익면적은 52.49㎡, 공중전시 익면하중은 440㎏/㎡로 통상의 전투기 평균치보다 약간 낮지만, 68도의 가변익과 평평한 동체부분에서 발생하는 양력이 41.16㎡ 발생하여 전체주익면적인 93.65㎡, 익면하중은 269㎏/㎡로 크게 낮아진다. 따라서 공중전시 기동이 여타 다른 전투기(F-15, F-16, F/A-18)보다 우수하다고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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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뱃암즈 16호(1997년 1월) / 이장호 -
AND
F-14는 베트남전의 교훈에 따라 한쪽 엔진이 피탄되어도 다른 엔진으로 비행을 계속할 수 있게 엔진과 엔진사이를 멀리 떼어 놓은 배치를 하였다. 엔진이 2기일지라도 F-111이나 F-4처럼 같이 붙어 있으면 피탄시 나머지 엔진도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었다. 또한 F-111 개발시 얻은 경험에 따라, 보트테일 저항 감소와 함께 엔진 압축기 실속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공기흡입구에서 엔진까지 흡입덕트를 일직선으로 구성하기 위해 동체에서 떨어진 위치에 엔진 나셀을 쌍동형식으로 배치하였다. 2개의 엔진 나셀을 이어주는 평평한 동체 구조들은 전체적으로 양력을 발생시키는 구조를 하고 있어 동체는 저항만을 일으킨다는 종래의 상식을 깨고 있다. 이러한 동체형식은 소련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MiG-29 펄크럼, Su-27 플랭커에 채택되었다.
F-14A에 탑재된 프랫 & 휘트니 TF30 엔진은 A-6에 사용된 컴팩트형 터보제트 엔진인 J52에서 발전한 터보팬 엔진으로 민간형 엔진인 JT8D와 같은 계열 관계이다.
TF30은 TFX의 F-111용 엔진으로 선정되어 세계 최초의 전투기용 터보제트 엔진으로 양산화되었다. 미해군은 F-111B용으로 경량화 모델인 TF30-P-12를 채택할 예정이었으나 F-111B의 계획 중지로 무산되었고 VFX로 등장한 F-14A에 TF30-P-412를 적용하였다.(배기노즐 개량버전)
TF30은 개발초기에 애프터 버너 장착 터보팬 엔진 특유의 문제인 블로우 아웃과 압축기 실속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 따라서 미해군은 F401 엔진을 탑재한 F-14B에 큰 기대를 걸었으나 예산문제로 포기하고 TF30을 장착한 F-14A를 오래도록 써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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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F30 엔진

그루먼사는 F-111B의 경험을 살려 F-14A의 공기흡입구를 2차원의 가변 면적형으로 채택하고 엔진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진 덕트를 만들어 공중전 기동시 급속한 스로틀 조작으로 인한 압축기 실속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였다.
프랫 & 휘트니사는 팬 블레이드를 개량한 TF30-P-414A로 엔진의 신뢰성을 개선하였으나 급격한 스로틀 조작 제한 문제는 해결을 못 본 상태였고, F-15와 F-16에 장착된 F100 엔진의 해군형인 F4 엔진은 F-14B에 테스트로만 끝났으며, F100 엔진의 팬을 확대하고 애프터 버너를 사용한 F401 엔진은 당시 신개발 최신 엔진이었지만 엔진 장기간 테스트의 제약으로 신뢰성에 확신이 없어 개발이 중지되었다.
프랫 & 휘트니의 엔진에 불신감이 늘어난 미해군은 F-14의 성능향상용 엔진으로 GE의 F101 DFE(Derivative Fighter Engine)을 선택하였다. 이 엔진은 B-1용으로 개발된 F101 엔진의 코어에 소형 팬을 장착한 엔진으로 프랫 & 휘트니의 터보팬 엔진시장에 도전하기 위해 GE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엔진이었다.
미공군도 프랫 & 휘트니사의 엔진에 대한 운용성 / 신뢰성 문제와 함께 독점방지를 위해 전투기용 터보 엔진의 이원화를 추진하여 GE의 F101 DFE를 사용하게 되었다.(이것이 바로 F110 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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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101 DFE 엔진

F101 DFE 엔진은 결국 F110-GE-400 엔진으로 TF30보다 추력이 10.5% 향상되고 신뢰도가 높아져 F-14B와 F-14D에 채택되었다.

- 컴뱃 암즈 16호(1997년 1월) / 이장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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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어느 한 전투기의 개발사를 살펴보면 노후된 구형 전투기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이 시작된 경우가 많은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F-14 톰캣의 경우는 1950년대 이래 미해군이 꿈에도 그리던 전천후 함대방공 전투기 계획이 여러 차례 좌절 끝에 마침내 현실로 이루어진 특이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F-14는 1970년에 첫 비행을 시작한 이후 30년 동안 미해군의 주력 함상 전투기였다. 지금은 F/A-18E/F 호넷이 뒤를 이었지만 함대방공 및 제공전투 능력면에서 F-14는 아직도 최강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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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함대방공 전투기로 개발된 F6D 미사일리어. 실험기로 끝났지만 톰캣 개발에 밑바탕이 되었다.

개발이 중지된 미사일리어
1950년대말 미해군은 장거리 공대지 및 공대함 미사일을 장착한 소련의 장거리 폭격기의 크나큰 위험에 직면하고 있었다. 당시 한창 경쟁적으로 각국이 개발한 각종 미사일은 사정거리와 명중율면에서 점차 성능이 향상되어 수백킬로미터 밖에서도 미해군의 항모기동부대를 공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원거리에서 미사일을 발사하고 회피하는 소련의 위협에서 벗어나려면 가능한한 적기를 함대에서 멀리 떨어진 발견 지점까지 마중나가서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에 확실하게 격추시켜야만 했다. 요즘이야 대함 미사일 격추가 용이하지만 당시의 기술수준으로는 어려운 일이었고, 미사일 발사모기가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에 미리 격추시킬 수 있도록 장거리 수색 및 추격, 공격 능력을 갖춘 함상 전투기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당시 미해군이 이처럼 항모기동부대의 방공력에 큰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SLBM을 갖춘 원자력 잠수함이 출현하기 이전까지 미해군의 항공모함은 핵폭격기를 적재하는 미국의 핵보복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공군의 핵폭탄폭판 탑재 장거리 폭격기와 더불어 항모는 매우 중요한 전략 수단이었으므로 소련에서도 유사시 이에 대항하여 수백기의 장거리 폭격기를 동원하여 수백발의 장거리 공대함 미사일로 미해군 항모기동부대를 초기에 격멸한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었다. 이러한 대량 보복 공격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어느 정도 일부 폭격기를 격추한다 해도 결국 항모기동부대는 무수한 미사일의 집중공격에 무력할 수 밖에 없다고 예상되었다.
이러한 소련의 전략에 맞서기 위해 장거리 수색 및 추적이 가능한 레이더와 장거리 AAM을 탑재할 수 있는 함대방공 전투기만이 해답이라는 결론에 따라 개발이 시작된 장거리 AAM은 1958년 12월에 벤딕스(Bendix) / 그루먼(Gruman)팀이 선정되어 XAAMN-10 이글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이글은 핵탄두를 장착한 최대속도 마하 3.4의 2단식 AAM으로 사정거리가 160km 이상이며 발사후 무선유도방식을 사용하며 중반 이후 미사일 내부에 탑재된 레이더를 사용하여 스스로 목표물을 찾아가는 액티브 레이더 호밍 방식을 사용하였다.
한편, 이글 미사일을 탑재한 전투기는 1959년 미해군에서 제시한 요구사양에 대해 6개의 메이커가 새로운 설계와 기존의 기체 개량 등의 안을 제시하였고 1960년 7월에 더글러스의 모델 D-9766이 선정되어 "F6D 미사일리어" 개발이 시작되었다.
미사일리어는 대형 레이더 안테나와 FCS(화기제어장치)를 장비하고 있었으며 주익에 6발까지 이글 AAM을 탑재하고 비상시에는 동체 아래에 2발을 추가탑재할 수 있었다. 미사일리어는 완전무장 후 함대를 이탈하여 4~6시간 동안 초계 비행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항속력을 갖출 예정이었다. 최대속도가 마하 0.9밖에 안 되는 아음속 전투기에 미해군이 그토록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F-4 팬텀II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 장시간 비행능력 부족 - 를 보완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개발되어 실전배치가 시작된 팬텀은 스패로 AAM로 장착 가능하고 속도도 마하 2 정도였지만 연료 소모가 많아 원거리 장시간 비행이 어려웠다. 따라서 초음속 비행 능력을 포기하고 장시간 공중에 머무를 수 있는 미사일리어 구상이 떠오른 것이다.
미사일리어는 원래 항속 성능을 높이기 위해 연료 소모가 적은 JTF10A 터보팬 엔진 2기를 장착하려 했다. 이 엔진은 세계 최초의 군용 터보팬 엔진으로 나중에 TF30-P-2란 형식번호로 F-111B와 F-14A에까지 탑재되었다.
미사일리어는 장시간 비행을 위해 조종사 2명과 미사일 유도 관제사 3명이 탑승하며 레이더 FCS는 웨스팅하우스의 APQ-18을 탑재할 예정이었다.(APQ-18은 16개 목표물을 추적하고 8개 목표물을 동시공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공격기 부대 호위, 대지 및 대함 공격 임무를 전혀 맡지 않고 함대방공 임무만을 수행하는 단일 목적 전투기라면 필요기수가 극히 적었을 뿐 아니라 비용대 효과면에서 나쁘기 때문에 찬반 논란이 일었다. 1961년 1월 케네디 정부가 들어서면서 취임한 로버트 S.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비용절감을 이유로 들어 그 해 4월에 미사일리어 개발계획과 이글 AAM 개발을 중지시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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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델 30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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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델 30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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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델 30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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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델 303F. 고정익이다.

TFX와 FADF
F6D 개발중지 이전에도 미해군은 제공전투가 가능한 새로운 함대방공 전투기 FADF(Fleet Air Defence Fighter) 구상을 세워놓고 있었다. FADF는 초음속 비행이 가능한 본격적인 전투기로 F6D도 FADF가 실현될 때까지의 임시적인 전투기에 불과했다.
한편 미공군은 F-105 선더치프의 후계를 찾고 있었는데 최대속도 마하 2.5에 핵폭탄 장착이 가능하고 대량의 무장탑재력 및 저고도 장거리 침투능력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러한 새로운 전투기에 대해 NASA는 새로 개발 중인 가변익을 미공군에 건의하여 1960년 6월 SOR103이란 명칭으로 개발 검토가 시작되었고 나중에 TFX(Tactical Fighter Experimental)란 명칭으로 구체화되었다. TFX는 임무의 성격상 전술 전투기라기 보다는 소규모 전략 폭격기에 가까운 존재였으며 미공군의 요구사항에 미루어 볼 때 기체의 크기가 대형화될 것이 충분히 예상되었다.
그러나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포드 자동차 부사장 출신답게 원가회계 개념을 지향하여 국방비 지출도 "비용 대 효과"라는 잣대를 들이대었고, 이에 따라 FADF와 TFX도 통합하여 개발비용을 절감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러나 양 기종의 성격이 다른 관계로 공동개발이 불가능하다는 검토 결과에도 불구하고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최소 85% 공통성을 유지시켜 개발비를 절약하는 한편 3천기 이상의 양산을 목표로 공동 전투기 개발을 명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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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공군의 Tu-95. F-14의 배치는 이 폭격기의 위협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결국 1961년 10월 1일 새로운 제안 요구서가 발행되었고, 1962년 11월 제너럴 다이나믹스 / 그루먼의 안이 채택되었다. 제너럴 다이나믹스는 공군형과 해군형의 공통점이 높았고, 그루먼은 전통적으로 함재기에 강했기 때문이었다. 공군형은 F-111A, 해군형은 F-111B란 명칭으로 각각 18기, 5기가 발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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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111B Aardvark

F-111B의 개발 실패
F-111A는 F6D에 탑재 예정이었던 TF30 엔진에 애프터 버너를 추가한 TF-30-P-1을 2기 장비한 병령 복좌의 대형 전투기였다. 또한 저공침투의 폭격 임무를 위해 지형 추적 레이더와 목표 포착 레이더를 장비하였고, 미공군의 항속력 /  탑재량의 요구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점차 대형화되어 갔다.
반면에 해군형 F-111B는 기본 형태는 F-111A와 같고 제너럴 다이나믹스가 개발을 담당하고 있었지만 항모 운용을 위해 기수를 줄여 전장이 A형보다 짧았으며 주익은 착함시 저속비행 문제 해결을 위해 A형보다 커졌다. 또한 제공 및 함대방공 임무를 위해 휴즈의 AN/AWG-9 레이더와 AIM-54(XAAM-N-11) 피닉스 AAM을 장비하였다.
1965년 5월 8일 F-111B는 첫 비행을 실시하였으나 엔진의 실속 문제와 중량 초과 문제로 항모 운용 불가 판정을 받고 개발이 중지되었다. 특히 계획 중량이 약 22톤에서 약 28톤으로 수정되었음에도 실제 개발에는 약 31톤까지 늘어났다. 이에 설계 변경을 통해 중량 감소를 추진했으나 A형과의 공통성은 80%에서 29%로 급격히 낮아졌고 결국 무장과 연료를 완전탑재할시 총 중량이 최고 36톤까지 늘어나자 개발비 상승으로 해군은 개발을 중지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애초에 공군의 전폭기와 해군의 제공/함대 방공 전투기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구상은 무리였고, 그나마 해군이 맥나마라 국방장관의 명령에 따라 울며 겨자먹기로 개발하다보니 개발이 원활하게 될리 없었다. 결국 F-111 프로젝트는 미공군 단독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F-111B가 비록 실패하기는 했지만 미해군으로서는 개발과정에서 가변익 기술, TF30 터보팬 엔진, AN/AWG-9 레이더, AIM-54 피닉스 AAM 개발기술을 고스란히 F-14 계획에 담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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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M-54 발사장면

VFX
F-111B가 중량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을 때 그루먼사는 F-111B가 실패할 것이라 예상하고 자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F-111B의 스펙을 그대로 담아낸 새로운 함상 전투기 모델 303이 그것이다. VFX-1이라 불린 전투기는 제공/함대 방공 임무 외에도 공격기 호위, 요격 임무까지 가능하게 설계되었다.
그루먼사는 1953년 모델 97이 보우트 F8U 크루세이더에, 1955년 모델 118이 맥도넬 더글라스의 F4H 팬텀II에 패배한 실패를 만회하고자 자체적으로 연구를 진행하였고 1967년 10월에 VFX-1(TF30 엔진)과 VFX-2(ATE 엔진) 계획안을 미해군에 제안하였다. 미해군은 F-111B의 시스템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도 크기가 F-4 수준으로 대폭 축소된 VFX에 큰 관심을 보였다.
미해군은 1967년 11월부터 1968년 3월까지 5개월 동안 F-111B와 VFX의 비교분석작업을 실시하였고 당시 미해군 주력기였던 F-4J 팬텀II보다 우수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특히, 베트남전을 교훈삼아 VFX의 우수한 기동성에 주목했다.
한편, 1967년 모스크바 에어쇼에 등장한 소련의 제3세대 전투기 MiG-23, 25, Su-15 등이 미공군/해군의 주력기인 F-4를 능가한다는 분석이 나오자 미해군은 VFX를 최대한 빨리 실현시키기를 희망하였고 F-111B의 개발중단과 함께 각 전투기 사업자에 VFX 요구 조건을 제시하였다.(미해군은 그루먼의 VFX 계획을 이미 선택한거나 다름없었지만 F-111B 개발을 중지시키면서까지 그루먼과의 수의 계약은 어려웠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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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14의 목업 모델 303E.

F-14의 개발
미해군의 제안 요구에 맥도넬 더글라스, 제너럴 다이나믹스, 그루먼, LTV, 노스아메리칸 등 5개사가 응모하였고, 비교 심사 결과 1969년 1월 그루먼의 모델 303E가 선정되어 F-14A라는 명칭으로 6기의 원형기 제작이 발주되었다.(추후 6기 추가 발주)
F-14A가 F6D와 F-111B를 거쳐 개발된 만큼 같은 성격을 이어받았음에도 발전된 모습으로, 보다 다목적 운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1950년대부터 미해군 항모 기동부대의 가장 큰 위협은 소련의 장거리미사일 폭격기였고, Tu-22 블라인더와 Tu-26 백파이어 같은 최신예 초음속 폭격기가 등장하면서 F6D 미사일리어 개발 당시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미사일리어 개발 당시에는 Tu-95 베어, Tu-16 배저가 주력기였지만 소련의 초음속 폭격기 등장으로 아음속 방공 함대 전투기는 무용지물이 되었고, 블라인더와 백파이어에 장착된 공대함 미사일 성능도 향상되어 미해군으로서는 소련의 공격 개시전에 선제공격을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부담을 가질 수 밖에 없어 레이더 FCS와 AAM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소련의 MiG 쇼크, 베트남전에서 MiG-17에 당한 아픈 기억들.. 이에 미해군은 F6D 개발 당시의 요구 사항을 한층 더 발전시켜 소련의 초음속 폭격기를 격추시킬 수 있게 초음속요격이 가능하고 소련의 신형 전투기 위험에 대처하고 이를 제압할 수 있는 기동성까지 요구하였다.
F-14의 개발 작업은 3단계로 나누어 시행되었다. 1단계는 F-111B의 기술을 이용하여 F-14A를 조기 개발하고 실전배치하며, 2단계에는 ATE 계획에  따라 F401-PW-400 엔진으로 교체하여 F-14B를 실전배치하고, 마지막 3단계에서는 ECCM 능력을 높인 경량 레이더 FCS를 장비한 F-14C를 배치한다는 계획이었다.(레이더 장비 개발이 기체 개발보다 기간이 더 많이 걸리기에..)
즉, F-14B는 엔진의 교환으로 기동성과 항속 능력을 향상시키고, F-14C는 무장 시스템을 강화시킨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실행하기에는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게 된다.
F-14A는 급속도로 추진되었고 1969년 3월에 기본설계가 완료되었고, 5월에 목업 심사가 실시되었다. 6월에는 원형기 제작이, 11월에는 지상에서의 가변익 테스트를 실시하였고, 개발 원형 1호기는 1970년 11월에 완성되어 12월 21일에 첫 비행을 실시하였다. 12월 30일 두번째 비행에서는 유압시스템의 고장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나자 무리한 일정 단축에 따른 재사고를 막기 위해 개발일정을 다소 늦추게 된다.(1971년말까지 총 7기의 개발 원형 7기 비행 테스트)
F-14A의 개발은 F-111B에서부터 축적된 여러 개발작업 덕분에 개발기간이 상당히 단축될 수 있었다. 특히 티타늄 합금을 구조 재료로 사용하여 중량 절감에 성공했고, 수평안전판 외부에 카본 복합재료를 사용하여 F-111B보다 약 3톤 가량 가벼워졌다. 그 결과 항모 운용상의 문제도 해결되었다.
F-14A의 최초 양산형은 개발 원형기를 포함하여 F-14A 톰캣이라는 제식 명칭이 붙여졌으며 부대배치는 1972년부터 실시되었다. 원래 톰캣의 양산 계획에 따르면 개발원형기 12기를 포함해서 497기를 생산할 계획이었다. 이에  따라 로트 I, II의 각 6기씩 개발 원형기에 이어 FY71로 로트 III(26기), FY72로 로트 IV(48기), FY73으로 로트 V(48기) 등 모두 122기를 양산할 예정이었다. 이들 122기는 고정가격으로 계약하였으나 개발비 증가와 인플레이션 때문에 그루먼사는 가격 인상을 요구했고, 로트 VI부터는 새로운 가격에 생산하기로 협의하였다.
F-14의 가격 인상에 따라 미해병대에 F-14를 배치하려던 계획은 취소되었고 미해군은 해결책으로 저가의 공격 전투기 계획인 VFAX를 추진하여 F/A-18을 개발하게 된다.

- 컴뱃암즈(1997년 1월 / 16호), 이장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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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4A가 처음으로 실전배치된 1972년 이후 1980년대까지는 F-14의 가장 화려했던 시기로서, 이 시기의 F-14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최강의 함상 전투기였다. 또한 이 시기는 일시적으로 무려 30개의 F-14 비행대가 유지되기도 했으며, 기체도색도 컬러풀한 고시인성 마크를 상당부분 유지하고 있던 시기로서, 이 시기의 기체들은 항공기팬들 사이에 인기가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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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14의 마크 중 가장 화려하다고 할 수 있는 VF-1 소속의 F-14A. 걸프전쟁 무렵에도 이런 화려한 마크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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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F-1과 함께 컬러풀한 마킹의 대표적인 비행대인 VF-111 Sundowners 소속의 F-14A. 기수의 샤크 마우스와 수직미익의 일장기 침몰을 상징하는 마크가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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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14 전환훈련 비행대인 VF-101의 F-14A. 애초에는 대서양 함대와 태평양 함대 각기 별도의 전환훈련 비행대가 있었으나, 후에 통합되어 VF-101만이 남아 전환훈련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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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F-31 소속의 F-14A. Felix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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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F-213의 F-14A. 로우비지화 된 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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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14A는 AIM-54 피닉스 미사일을 6발까지 장착가능할 수 있지만, 실제 6발을 탑재하면 엔진 추력이 부족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130km 이상의 사정거리를 낼 수 있는 피닉스의 위력은 독보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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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이외에 유일하게 F-14를 보유하고 있는 이란공군. 호메이니의 혁명이 성공하면서 대부분의 이란 F-14 파일럿들은 숙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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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F-301 소속의 F-14A. 원래는 예비역 비행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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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F-51 Screaming Eagles의 F-14A. 알래스카에서 소련공군의 Tu-95RC를 요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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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F-32 소속 F-1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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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미핥기 마크로 유명한 VF-114 소속의 F-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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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SA의 각종 테스트에 사용되던 F-14A. 테스트를 위한 추가장비 장착을 위해 후방석에 사람이 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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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F-21 Freelancers 소속의 F-14A. 원래 인디펜던스함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F-14 비행대 축소로 인해 1996년 1월에 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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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태평양 함대의 F-14 전환훈련 비행대대 VF-124


- 자료출처 : 컴뱃암즈 16호(1998년 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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