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89 Scorpoion>
Northrop社는 F-5 시리즈와 YF-17 코브라 전투기를 개발한 경력 때문에 경전투기 메이커로 잘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2차 대전 중에 제작한 쌍발 대형 야간 전투기인 P-61 블랙 위도우와 2차 대전 후 방공기인 F-89 스콜피온과 같은 대형 전투기를 주로 제작한 메이커였다.
그런데 미공군이 야심적으로 추진한 센츄리 시리즈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에드거 슈미트를 1952년에 부사장으로 스카웃하면서부터 Northrop社는 경전투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에드거 슈미트는 이미 2차 대전 당시 가장 우수한 전투기로 인정받은 P-51 무스탕과 미국 최초의 후퇴익 제트 전투기인 F-86 세이버를 개발한 엔지니어로서 당시 유행하는 대형 전투기의 흐름에 대해 되돌아보고, 소형 - 경량이면서 더 강한 추진의 엔진을 조합시키는 데에 착안하고 있었다.
특히 6.25 당시 자신이 개발한 세이버가 MiG-15에 고전하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은 에드거 슈미트는 경량 전투기를 무시하는 기존 메이커와 결별하고 자신의 경량 전투기 개념을 실현하고자 Northrop社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커다란 전자장비를 탑재한 고성능 대형 전투기에 밀려 외면당하던 경량 전투기는 수십 년이 지나면서 YF-16과 YF-17의 출현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Northrop社가 벤처 비즈니스로 개발한 N-102 Fang은 외형이나 설계 사상이 F-5와는 전혀 다른 기체로 센추리 시리즈가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경량 전투기의 실현 가능성을 검토하는 기체였다. Fang은 수평미익이 있는 델타익의 요격기로, 엔진을 동체 아래에 탑재하고 가변식 공기흡입구를 기수의 아래에 배치한 특이한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주익은 고익배치를 하고 주익의 앞에는 코니컬 캠버를 주었다. 엔진은 GE의 J79 또는 프랫 앤 휘트니의 J57, 라이트의 J65 등이 후보로 올랐으며, 20mm 벌컨을 비롯하여 8종류의 무장을 탑재할 예정이었다.
1954년에 목업이 완성되어 수직미익에 52-2777이라는 미공군 시리얼 넘버를 넣었지만 사실 이 번호는 KC-97L이 사용한 번호였다. 한편 전환훈련용 복좌형도 제안 되었는데, 길이 12.85m인 단좌형의 동체를 13.56m로 연장하여 후방석을 신설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고성능을 추구한 경량 전투기인 N-102는 불행히 같은 시기에 등장한 록히드의 F-104 Starfighter에 밀려 실현되지 못했다.
당시는 미사일 만능주의가 우세하던 시절이어서 높은 기동성의 제트 전투기 공중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미사일 한 방이 모든 것을 끝낸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N-102의 개념을 미공군은 이해하지 못했고 개발계획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물론 마하2를 넘는 제트 전투기가 공중전을 안할꺼라는 예상을 벗어나 베트남전에서 F-4는 미그기에게 당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Fang을 단념한 Northrop社는 눈을 해외로 돌려 NATO, SEATO(동남아조약기구), 중동국가가 보유하고 있던 1세대 제트 전투기를 대체할 새로운 전투기에 대해 검토를 시작하였다. Northrop社는 기술진을 세계 각국에 파견하여 데이터를 수집하였고 알맞은 성능에 가격이 저렴하며, 취급이 용이하고, 신뢰성이 높고, 짧은 활주로에서도 이착륙이 가능한 전투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 세계 각국은 미공군이 개발 중인 센추리 시리즈와 전혀 다른 성격의 전투기를 원하고 있었고, 노후화된 제1세대 전투기를 보유 중이던 나라들은 신기종으로 교체를 희망하고 있었으나 고가의 센추리 시리즈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착안한 Northrop社는 1955년대 초부터 새로운 성격의 경량전투기 개발을 시작하였다.
이로써 N-102기의 구조를 변경시킨 N-156 계획이 시작되었고 이와 동시에 미공군은 기존의 T-33 고등훈련기를 대체할 음속비행이 가능한 차기 제트 훈련기 소요를 발표하였다.
Northrop社는 우선 고등훈련기 사업을 위해 N-156 계획을 고등훈련기쪽으로 방향을 수정하였고 N-156의 조종석을 2인승으로 개조한 N-156T를 미공군에 제시하였다. 이 기종은 비용 대 효과면에서 인정받아 1956년 7월에 채택되어 1959년에 첫 양산형 비행에 성공하였다. 이것이 바로 T-38 Talon이다.
미공군의 고등훈련기 사업에 T-38이 선정된 Northrop社으로서는 자금 걱정 없이 해외수출용 전투기 계획인 N-156F에 다시 여력을 쏟아부었다. N-156F는 1959년 5월 30일에 1호기를 공개하였으며 7월에는 첫 비행에 성공하였다. 당시 N-156F에 장착된 엔진은 후연기가 없는 YJ85-GE-1(추력 955kg)이었고 2호기는 후연기가 장착된 J85-GE-5(추력 1,745KG)를 장착하여 초음속 성능을 확보했으나 3호기를 제작하던 도중에는 미공군은 효용성 및 F-104를 의식해 평가시험을 중단하기도 했다.
1960년대가 되어 미국은 동맹국과 우방국의 공군력 강화를 위해 이들 국가에 대한 군용기 원조 프로그램을 재실시하기로 시작했는데, 이 프로그램에는 Northrop社의 N-156F가 선정되어 N-156F는 다시 빛을 발하게 된다. 초음속 성능의 N-156F로 소련의 MiG-19를 대응할 수 있고, 동맹국과 우방국에 초음속 전투기를 공급하면서도 항공기 탑재 레이더 기술의 유출은 방지할 수 있는 최적의 기종이었던 것이다.(Northrop社는 화력제어 레이더를 N-156F에 장착하려 했지만, N-156F의 기수가 작아서 탑재할 수 없었음) 이런 이유로 선정된 N-156F는 곧바로 양산형 체제로 진행되었고, 1963년 5월에 YF-5A 1호기(N-156F 3호기) 첫 비행에 성공했고 10월에는 F-5A가 첫 비행에 성공한다.